친구가 힘든 얘길 털어놓습니다. 화가 납니다. 내 친구를 이렇게 힘들게 만드는 사람들에게 화가 납니다. 하지만 저는 압니다. 이 친구가 제게 이해와 위로만을 구하기 위해 어렵게 자신의 얘길 꺼내 놓은 것이 아님을.. 저도 함께 있었던 다른 친구도 고민을 통해 친구에게 이런저런 노력을 해 보면 어떨까 얘기해 줍니다.
살다보면 늘 어려움은 있습니다. 수많은 관계속에서 살아가며 사람들과의 충돌은 피할 수 없는것 같습니다. 참 아이러니하게도 제게는 가장 가까이의 관계, 가족간의 불화가 제일 마음을 다스리기 힘든것 같습니다. 가장 가까이에서 가장 오래도록 함께한 관계이기에 마찰에서 오는 서운함은 곱절이 됩니다. 그도 그럴것이 과거의 서운함부터 모두 끌어다 놓으니 억울함과 서운함이 그렇게 커질 수 밖에 없습니다. 가족간의 안좋은 일을 누군가에게 털어놓는 것이 싫었습니다. 일단 내 가족구성원의 험담을 누군가에게 한다는 것이 마치 내 얼굴에 침을 뱉는것만 같이 창피하고 이걸 털어놓는다고해서 뭐가 달라지겠는가 싶었습니다. 그럼에도 가까운 친구에게 털어놓을때는 ‘네 잘못은 없어. 다 그 사람탓이야.’라는 완전한 내 편에서의 위로를 받고 싶어서였습니다.
몇달전 남편과 힘든 일이 있었습니다. 많은 시간을 함께 얘길하고 풀어가고 싶었지만 우리사이의 갈등은 좁혀지지가 않더군요. 고민이 있을때 많이 얘길 나누던 친구가 생각났습니다. 남편에게 양해를 구하고 바로 친구에게 연락을 해 무작정 친구집으로 갔습니다. 긴시간동안 친구부부와 얘길 나눴습니다. 저희부부보다 한참 연배가 있으신 친구부부께서는 당신들의 지나온 삶을 통해 겪으셨던 많은 경험들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 안에서 저희는 누가 잘못을 했고 누가 잘했다가 아닌 서로를 위해 부족했던 우리모습들을 보게되었습니다.
요즘 저는 “친구"라는 말이 머리에 박힌듯이 그 말을 참으로 많이 뱉고 생각합니다. 신기하게도 자꾸만 친구들이 보고싶고 얘기하고 싶고 그립습니다. 류시화 시인의 “그대가 곁에 있어도 그대가 그립다"는 싯구처럼 봤는데도 또 보고싶고, 내일이면 만날것인데도 오늘도 보고싶습니다. 남편이 그렇게 자주 보는데도 뭐 그리 할말이 많아서 나갈때마다 늦느냐며 묻습니다. 신기하게도 자주보는데 할 얘기는 계속 넘쳐납니다. 제게는 저와 띠동갑보다 나이가 많은 친구도 있고 저보다 나이가 어린 친구들도 있습니다. 제가 고민을 털어놓으면 제 친구들은 제게 욕을 한바가지 해 주기도 하고 때론 안아주기도 하고 정말 가슴깊이에서 저를 위한 충고를 해주기도 합니다. 참 든든합니다. 본당에 이렇게 든든한 친구들이 많아 행복합니다.
50일동안 본당을 방문했던 조일영 아가다 언니가 지난 금요일 한국으로 돌아가셨습니다. 10여년을 선교사로 활동했던 이력이 있으신 언니를 선교사님으로 부르시는 신자분들이 많이 계셨지만 제게는 본받고 싶은 친구입니다. 선교사로 십여년을 보내시며 다양한 많은 사람들을 대하셨던 언니의 살아있는 경험이 많은 신자분들로 하여금 조언을 받고싶고 함께 얘기를 나누어 보고싶게 했던것 같습니다. 많은 신자분들이 함께 하시고자 할 때마다 힘든 내색없이 응해주시는 언니가 참 감사했습니다. 이곳에 오시면 신자분들께 도움이 될것이라는 신부님의 말에 선뜻 이 먼 거리까지 나서주신 언니와 신부님의 우정이 따뜻했습니다. 무엇을 서로 말하지 않아도 서로를 믿는, 서로가 무엇을 원하는지를 말없이 알아차리는 그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졌습니다. 먼 걸음을 하여 오신 친구분옆에서 신부님은 참으로 편안해 보이셨습니다.
친구는 그런것인가 봅니다. 다 주어도 아깝지 않고, 다 보여도 창피하지 않은, 친구의 실수가 내 실수 인것처럼 조언을 해주어 앞으로 나아가게 해 주고 싶은, 조금 과장을 하자면 또하나의 나 인것 같습니다. 이렇게 좋은 친구를 그동안 왜 격식과 예의에 갇혀 많이 만들지 못했는지 후회가 됩니다. 왜 그간 용기를 내어 누군가에게 다가서지 못했는지 후회가 됩니다. 그리스도께서 하신 말씀이 생각납니다. “누구든지 가진 자는 더 받아 넉넉해지고, 가진 것이 없는 자는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 친구는 친구를 낳는것 같습니다. 저 처럼 후회하지 마시고 용기내시어 더 많은 친구를 만드시기 바랍니다^^